출처:
과학이 끄덕끄덕 - 화폐에 숨어 있는 첨단 기술
한수원 사보 n파워 2005년 12월호 중에서
화폐 제조 기술과 위조기술
창과 방패의 관계
내년 1월부터 새롭게 바뀐 5000원짜리 지페를 만난다. 지난 11월초 한국은행은 위조 방지기능을 강화한 새 5000원 지폐 도안을 공개했다. 앞면에 등장하는 율곡 이이 초상을 빼고 거의 다 바꾼 도안이다. 뒷면 그림도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8폭 병풍그림 '조충도' 가운데 수박과 맨드라미 그림으로 바뀌었다. 크기도 지금보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14mm, 8mm 줄어든 가로 142mm, 세로 68mm로 휴대가 편리해진다.
한국은행이 23년만에 5000원 지폐 도안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조 방지다. 최근 컴퓨터와 복사 기술의 발달로 위조 지폐가 급속히 늘고 있다. 10,000원 지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조가 쉽기 때문에 한국은행에서도 5000원 지폐 교체를 서두르고 있다.
이번 5000원 지폐에 적용된 위조 방지 기술은 모두 20여 가지. 이중 대표적인 기술인 홀로그램, 특수잉크, 볼록인쇄, 숨은 그림 등을 소개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한반도, 태극과 액면숫자, 4괘가 나타나는 홀로그램은 위조 방지 대표 기술로 시변각장치OVD라고도 한다. 색상이 변하는 원형의 얇은 특수필름을 부착하고 아랫부분에 문자를 덧인쇄했다. 위조를 위해 복사하거나 스캔을 하면 한 모양만 나타나게 된다. 홀로그램은 홀로그래피 기법으로 나타나는 간섭무늬다. 홀로그래피는 빛이 겹치면서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간섭현상을 이용하는 사진 기법이다. 사진에서 빛이 없는 부분은 어둡고 빛이 많은 부분은 밝게 되는데, 홀로그래피는 빛의 위상 차이를 이용해 물체를 표현한다.
뒷면 오른쪽 액면숫자 5000은 색상이 보는 각도에 따라 황금색에서 녹색으로 변한다. 빛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특수잉크인 시변각잉크(OVI 또는 색변환잉크)를 이용한 기술로 조개껍질 안을 들여다보면 보는 각도에서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현상을 응용했다. 진공상태에서 빛 굴절률이 서로 다른 금속을 가열하고 증발시키면 여러 겹의 얇은 막이 만들어진다. 이 막을 아주 작게 쪼개 잉크로 만든다. 이 특수잉크로 인쇄한 글자나 모양은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색상을 띠는데, 이같은 원리가 적용됐다. 이 기술 역시 복사나 스캔 방지에 효율적이다.
율곡 이이 초상과 뒷면 수박 그림, 문자와 숫자 등을 만지면 오돌토돌한 볼록감촉을 느낄 수 있다. 요판인쇄기법이 적용된 이 기술은 잉크가 채워진 오목한 금속 인쇄판에 종이를 대고 정밀한 인쇄기가 누르면 인쇄종이가 볼록하게 나타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또 앞면을 비스듬히 보면 액면숫자 오른쪽에 숨겨진 문자 'WON'이 나타나는데, 볼록인쇄기법을 응용한 요판잠상이다.
한국은행 발권국의 이정욱 과장은 "요판인쇄기술은 정밀한 인쇄기와 정교한 그림 및 금속 조각 기술 등 많은 비용과 시설이 갖춰져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화폐위조를 막는 핵심 기술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율곡 이이 초상 오른쪽과 뒷면 세로로 쓰여진 '5000 won' 오른쪽을 빛에 비추면 '한국은행 BANK OF KOREA 5000'이라는 문자가 바르게 또는 아래위가 반대로 번갈아 인쇄되고 형광처리된 얇은 플라스틱 띠를 볼 수 있다. 또 앞면 '오천원'을 빛에 비추면 가로로 3개의 밝은 막대와 2개의 어두운 막대가 교대로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또 앞면 왼쪽의 빈 공간을 자세히 보거나 빛에 비추면 '5000'이라는 숫자와 오른쪽을 바라보는 율곡 이이 초상이 숨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워터마크라고 불리는 '숨은 그림'이다.
숨은 그림인 워터마크는 13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유래됐다. 수많은 제지공장이 있었던 파브리아노 지방에서는 공장마다 생산하는 다양한 종이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각 종이마다 특정표시를 붙이기 시작했다. 요즘으로 치면 상표인 셈인데 이것이 현재의 워터마크의 시작이다. 집 바닥에 깔려있는 장판이나 벽지, 또 노트에 새겨진 상표 이름을 참고하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숨은 그림을 왜 '젖은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라는 뜻의 워터마크라는 용어로 표현할까. 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하지만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알면 금방 이해가 된다. 종이는 나무를 잘라서, 이를 말리고 찐 다음,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나무의 섬유질을 물에 불리고 표백한 후 압착하는 단계에서 젖은 종이에 가는 철사나 철편으로 문자나 마크를 만들어 종이맘 위에 올려놓고 종이를 만들면 철사두께만큼 종이섬유가 덜 쌓이므로 그 부분이 얇아져서 반투명하게 보인다.
이때의 종이가 젖어 있는 상태여서 워터마크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이다. 지폐에서도 종이가 젖어 있을 때 숨은 그림을 인쇄하고 이를 말린 다음, 최종적으로 겉부분 인쇄가 이뤄져 돈으로 탄생한다.
앞면과 뒷면 곳곳에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돋보기 같은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미세 문자가 인쇄되어 있다. 또 앞면 한국은행 왼쪽의 동그란 원 속의 무늬를 빛에 비추면 뒤판의 무늬와 합쳐져 완성된 태극무늬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은행에서 밝힐 수 없는 추가적인 위조방지기술이 적용돼 지폐가 만들어진다.
전자화폐가 등장해 종이와 동전으로 된 실 화폐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가 등장해 종이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틀린 것처럼, 실 화폐도 계속 위세를 떨칠 가능성이 높다. 화폐 기술과 위조 기술은 창과 방패의 관계와 같아 화폐가 존재하는 한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이 끄덕끄덕 - 화폐에 숨어 있는 첨단 기술
한수원 사보 n파워 2005년 12월호 중에서
화폐 제조 기술과 위조기술
창과 방패의 관계
내년 1월부터 새롭게 바뀐 5000원짜리 지페를 만난다. 지난 11월초 한국은행은 위조 방지기능을 강화한 새 5000원 지폐 도안을 공개했다. 앞면에 등장하는 율곡 이이 초상을 빼고 거의 다 바꾼 도안이다. 뒷면 그림도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8폭 병풍그림 '조충도' 가운데 수박과 맨드라미 그림으로 바뀌었다. 크기도 지금보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14mm, 8mm 줄어든 가로 142mm, 세로 68mm로 휴대가 편리해진다.
한국은행이 23년만에 5000원 지폐 도안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조 방지다. 최근 컴퓨터와 복사 기술의 발달로 위조 지폐가 급속히 늘고 있다. 10,000원 지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조가 쉽기 때문에 한국은행에서도 5000원 지폐 교체를 서두르고 있다.
이번 5000원 지폐에 적용된 위조 방지 기술은 모두 20여 가지. 이중 대표적인 기술인 홀로그램, 특수잉크, 볼록인쇄, 숨은 그림 등을 소개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한반도, 태극과 액면숫자, 4괘가 나타나는 홀로그램은 위조 방지 대표 기술로 시변각장치OVD라고도 한다. 색상이 변하는 원형의 얇은 특수필름을 부착하고 아랫부분에 문자를 덧인쇄했다. 위조를 위해 복사하거나 스캔을 하면 한 모양만 나타나게 된다. 홀로그램은 홀로그래피 기법으로 나타나는 간섭무늬다. 홀로그래피는 빛이 겹치면서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간섭현상을 이용하는 사진 기법이다. 사진에서 빛이 없는 부분은 어둡고 빛이 많은 부분은 밝게 되는데, 홀로그래피는 빛의 위상 차이를 이용해 물체를 표현한다.
뒷면 오른쪽 액면숫자 5000은 색상이 보는 각도에 따라 황금색에서 녹색으로 변한다. 빛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특수잉크인 시변각잉크(OVI 또는 색변환잉크)를 이용한 기술로 조개껍질 안을 들여다보면 보는 각도에서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현상을 응용했다. 진공상태에서 빛 굴절률이 서로 다른 금속을 가열하고 증발시키면 여러 겹의 얇은 막이 만들어진다. 이 막을 아주 작게 쪼개 잉크로 만든다. 이 특수잉크로 인쇄한 글자나 모양은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색상을 띠는데, 이같은 원리가 적용됐다. 이 기술 역시 복사나 스캔 방지에 효율적이다.
율곡 이이 초상과 뒷면 수박 그림, 문자와 숫자 등을 만지면 오돌토돌한 볼록감촉을 느낄 수 있다. 요판인쇄기법이 적용된 이 기술은 잉크가 채워진 오목한 금속 인쇄판에 종이를 대고 정밀한 인쇄기가 누르면 인쇄종이가 볼록하게 나타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또 앞면을 비스듬히 보면 액면숫자 오른쪽에 숨겨진 문자 'WON'이 나타나는데, 볼록인쇄기법을 응용한 요판잠상이다.
한국은행 발권국의 이정욱 과장은 "요판인쇄기술은 정밀한 인쇄기와 정교한 그림 및 금속 조각 기술 등 많은 비용과 시설이 갖춰져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화폐위조를 막는 핵심 기술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율곡 이이 초상 오른쪽과 뒷면 세로로 쓰여진 '5000 won' 오른쪽을 빛에 비추면 '한국은행 BANK OF KOREA 5000'이라는 문자가 바르게 또는 아래위가 반대로 번갈아 인쇄되고 형광처리된 얇은 플라스틱 띠를 볼 수 있다. 또 앞면 '오천원'을 빛에 비추면 가로로 3개의 밝은 막대와 2개의 어두운 막대가 교대로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또 앞면 왼쪽의 빈 공간을 자세히 보거나 빛에 비추면 '5000'이라는 숫자와 오른쪽을 바라보는 율곡 이이 초상이 숨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워터마크라고 불리는 '숨은 그림'이다.
숨은 그림인 워터마크는 13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유래됐다. 수많은 제지공장이 있었던 파브리아노 지방에서는 공장마다 생산하는 다양한 종이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각 종이마다 특정표시를 붙이기 시작했다. 요즘으로 치면 상표인 셈인데 이것이 현재의 워터마크의 시작이다. 집 바닥에 깔려있는 장판이나 벽지, 또 노트에 새겨진 상표 이름을 참고하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숨은 그림을 왜 '젖은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라는 뜻의 워터마크라는 용어로 표현할까. 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하지만 종이를 만드는 과정을 알면 금방 이해가 된다. 종이는 나무를 잘라서, 이를 말리고 찐 다음,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나무의 섬유질을 물에 불리고 표백한 후 압착하는 단계에서 젖은 종이에 가는 철사나 철편으로 문자나 마크를 만들어 종이맘 위에 올려놓고 종이를 만들면 철사두께만큼 종이섬유가 덜 쌓이므로 그 부분이 얇아져서 반투명하게 보인다.
이때의 종이가 젖어 있는 상태여서 워터마크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이다. 지폐에서도 종이가 젖어 있을 때 숨은 그림을 인쇄하고 이를 말린 다음, 최종적으로 겉부분 인쇄가 이뤄져 돈으로 탄생한다.
앞면과 뒷면 곳곳에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돋보기 같은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미세 문자가 인쇄되어 있다. 또 앞면 한국은행 왼쪽의 동그란 원 속의 무늬를 빛에 비추면 뒤판의 무늬와 합쳐져 완성된 태극무늬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은행에서 밝힐 수 없는 추가적인 위조방지기술이 적용돼 지폐가 만들어진다.
전자화폐가 등장해 종이와 동전으로 된 실 화폐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가 등장해 종이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틀린 것처럼, 실 화폐도 계속 위세를 떨칠 가능성이 높다. 화폐 기술과 위조 기술은 창과 방패의 관계와 같아 화폐가 존재하는 한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 박응서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