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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옆에서

YH, jAcoB 2005. 10. 22. 11:02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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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 올빼미과의 새. 일명 귀촉도, 자규. 한(恨)과 원(怨)의 심상으로 고전 작품에도 자주 등장함.
::뒤안길 : '뒤꼍'의 뜻을 지닌, 으슥하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
::무서리 : 그 해의 가을 들어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


1947년 11월 9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된 서정주의 대표작품으로 4연 13행의 자유시이다. 1956년 《서정주 시선》에 수록되었다. 계절적으로는 봄, 여름, 가을까지 걸쳐 있고 국화를 소재로 해 창작되었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중년 여성의 원숙미를 표현했다고 하여 제3연의 ‘누님’이 중심 모티프가 된다고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국화’의 상징성도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국화가 피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한 생명체의 신비성을 감득할 수 있다. 찬서리를 맞으면서 노랗게 피는 국화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표상된다. ‘국화’는 ‘괴로움과 혼돈이 꽃피는 고요에로 거두어들여진 화해의 순간을 상징하는 꽃’이라고도 한다.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슬픈 울음도, 먹구름 속에서 울던 천둥소리도, 차가운 가을의 무서리도 모두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인 것처럼 ‘국화’의 상징성은 중요하다.

이 작품의 핵심부가 되는 3연에서 ‘국화’는 거울과 마주한 ‘누님’과 극적인 합일을 이룩한다. 지난 날을 자성하고 거울과 마주한 ‘누님’의 잔잔한 모습이 되어 나타난 ‘국화꽃’에서 시인은 서정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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