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5 14:05

2009-7-5

마태오10,17-22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솔뫼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피난 교우였던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와 모친 고 우르술라 사이의 장남이었습니다. 16세 때인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오랜 세월 숱한 고생 뒤에 마침내 사제품을 받습니다.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인근의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가 집전한 서품식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즉시 8월 31일에 조선 입국을 시도합니다. 라파엘 호라 명명한 작은 목선으로 서해 횡단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1845년 10월 12일 충청도 나바위 인근 바닷가에 상륙하였습니다. 이후 선교 활동에 힘쓰며 선교사들의 입국을 위해 노력합니다.

이듬해 6월, 서해를 통한 뱃길을 알아보려 백령도 부근으로 갔다가 관헌에 체포됩니다. 수차례 문초와 회유를 받았지만 끝내 변치 않았습니다. 마침내 군문효수형을 받고 한강 백사장에서 순교합니다. 사제 생활 1년 1개월 만인 1846년 9월 16일의 일이었고 당시 나이 26세였습니다.

그분이 한국의 첫 사제였기에 성인으로 모시는 것은 아닙니다. 첫 사제답게 사셨기에 성인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그토록 어렵게 사제가 되셨지만 기꺼이 교회의 거름으로 자신을 바쳤기에 우리는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7-5  (0) 2009/07/05
2009-7-4  (0) 2009/07/04
2009-7-3  (0) 2009/07/03
2009-7-2  (0) 2009/07/02
Trackback 0 Comment 0
2009/07/04 08:04

2009-7-4

마태오 9,14-17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유다인들의 단식은 율법의 규정입니다. 율법의 명에 따라 음식을 끊었습니다. 이후 단식은 조상들의 전통이 되어 누구나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식의 이유에 앞서 단식 자체에 매달리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단식은 음식을 먹지 않는 행위입니다. 목적 없는 단식은 이유 없이 육체를 괴롭히는 고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단식의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라고 하셨습니다. 신랑은 예수님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는 당신의 일을 하자는 말씀입니다. 단식은 하느님께로 가는 수단입니다. 음식을 절제함으로 주님께로 마음을 향하게 하는 보조 수단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 단식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함께 계시는 날은 잔칫날입니다. 우리 인생의 많은 날을, 우리는 성체를 모심으로써 잔칫날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삶은 늘 축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신앙생활이 힘겨워질 때는 사순절이 아니더라도 단식할 수 있습니다. 단식을 통해 내 감정과 욕망의 절제를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과 연관된 단식은 언제라도 은총입니다.

'오늘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7-5  (0) 2009/07/05
2009-7-4  (0) 2009/07/04
2009-7-3  (0) 2009/07/03
2009-7-2  (0) 2009/07/02
Trackback 0 Comment 0